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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표지.jpg

 

 라우로 마르티네스 지음|김기협 옮김|496면|발행일 2008년 4월 29일|값 20,000원|ISBN 9788991510661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뒤흔든 살인사건

― 음모와 폭력의 정치 극장

 


 그 후 사나흘 동안 너무 많은 죽음이 있어서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길거리가 시체의 이런저런 토막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연극과 이야기를 좋아하던《군주론》의 저자를 비롯해 며칠 동안 피렌체 사람들은 소름끼치는 광경과 음향이 넘치는 극장에서 살았음이 틀림없다.

―“피의 4월” 중에서    

 


 1478년 4월의 어느 일요일, 한 무리의 암살자들이 메디치가의 두 지도자를 피렌체 대성당에서 암살하려 했다. 피렌체의 비공식 국가원수 ‘위대한 로렌초’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가 표적이었다. 다행히 로렌초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동생 줄리아노는 차가운 성당 바닥에서 선혈이 낭자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파치 음모’라 알려진 이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피비린내 나는 보복이 뒤따랐다.

 15세기 말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를 집중 조명한 책《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April Blood》이 출간되었다. 제목에서도 짐작하겠지만 이 책이 주목한 것은 독특하게도 한 살인사건이다. ‘피의 4월’ 혹은 ‘파치 음모’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피렌체의 역사는 분기점을 맞는다.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피렌체 공화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독재국가로 변모하게 된다. 이 책은 음모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복합적인 의도와 그에 얽혀있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폭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피렌체 공화국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4월의 피, 메디치의 영욕을 수혈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복수의 맛을 모르는 자는 사내가 아니었다. 로렌초 또한 아무리 뛰어난 시인이자 감식가였다 하더라도 잔혹한 복수에 가슴이 떨릴 만큼 심약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정치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음모” 중에서

 

이야기는 1488년 4월 한 백작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된다. 1478년 ‘피의 4월’이 있은 지 꼬박 10년 후의 일이다. “복수의 요리는 차갑게 먹는 것이 좋다”는 프랑스 속담으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마지막 설욕을 묘사하며 저자는 우리를 서서히 문제의 ‘4월 사건’으로 이끈다.

메디치가 암살 음모사건에는 당시 이탈리아를 이끌던 거의 모든 중요 인물들과 세력이 연루되었다. 이 이야기에는 이탈리아의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야망을 가졌던 로렌초 데 메디치를 비롯해 교회의 부와 권력을 자기 조카들에게 빼돌리는 데 열중한 교황 식스투스 4세, 암살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 추기경, 나폴리의 왕과 용병으로 고용된 직업군인들, 그리고 피렌체의 거부인 파치 가문의 유력인물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 군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면서 한 시대 영욕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또한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 시대의 제도나 관습, 상징 등을 입체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 배경이 짙게 깔렸음에도 하나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이러한 이야기를 구성한 저자의 관점과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나중에 교황 클레멘트 7세가 된 줄리오 데 메디치의 위탁으로《피렌체의 역사》를 썼던 니콜로 마키아벨리 이래 메디치가의 훌륭함을 증명하고 파치가의 몰락을 정당화하는 역사서술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여기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특히 정치적 암살 같은 테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피의 4월’이라 불리는 사건에 대한 역사서술을 불공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는 이 사건을 메디치가와 파치가라는 두 가문의 관계를 뛰어넘어 피렌체의 유산계층 전체와 정치구조, 그리고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의 긴 안목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이와 같이 폭넓고 균형을 갖춘 접근은 책의 갈피갈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피렌체 공화정이 몰락한 일차적 책임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있다고 보았다. 4만 남짓의 인구가 거미줄 같은 관계망을 맺고 있던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는 로렌초나 파치가 같은 사람들에게 너무 좁은 곳이었다. 저자는 로렌초가 ‘피의 4월’을 모든 권력을 자기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경쟁자들과 반대자들을 반역자로 몰아 정계에서 축출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을 입증할 목적으로 사건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로렌초가 사건이 촉발한 공포심을 조장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사건으로 벌어진 유혈사태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질서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독재 권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 개혁은 5년 동안만 시행하기로 했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술수였다. 로렌초 일당은 나중에 이 개혁이 계속 시행되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멋지게 조율된 이 ‘개혁’은 시기, 의석 수, 거짓말, 협박, 뇌물과 선거 조작이 결합한 종합예술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정치도 하나의 예술이었다. 적어도 메디치가의 피렌체가 “시민의 손으로”, “헌법에 따라” 통치되는 방법은 그랬다.

 


당시 로렌초에게는 절대 권력을 행사할 만한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었으나, 공화정 하에서 비공식적으로 군주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정부 공금을 전용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피렌체의 충복이자 애국시민이며 수호자임을 자부했다. 저자는 이런 로렌초가 피렌체 공화국을 위기의 벼랑으로 몰아붙인 장본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공화국의 위기가 그의 뛰어난 재능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필연적 귀결이었는지, 아니면 바로 그 재능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를 묻는다.

저자는 이 물음에 직접적인 답을 내리는 대신 충분한 암시를 하고 있다.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로렌초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많이 밝혀냈다는 것이다. 예컨대 피렌체의 외교정책 실종, 정부 공채 조작, 재판 개입, 공금 착복, 요직 장악, 불량주화 발행, 심지어 중매를 빙자해 억지 결혼을 시킨 일 등이 지적됐다. 그런데 공식적인 직책 없이 어떻게 이런 절대 권력의 행사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메디치가만의 독특한 통치방식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통념과 달리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의 재능은 예술과 문학 분야에만 발휘된 게 아니었다. 정치에도 그 못지않은 재능이 발현되었는데, 특히 메디치 시대 피렌체의 거물 정치가들 가운데는 뛰어난 천재들이 많았다. 따라서 1478년 4월 피렌체의 피바다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정치적 면모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역사에 관한 엄청난 분량의 근래 연구에서는 정치를 매우 축소해서 보거나 심지어 아주 무시하기까지 하고 있다. 정치라는 것이 더럽고 사악한 것이거나, 아니면 너무나 재미없는 것이어서 입에 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여기는 듯하다.

 정치가 ‘비열하고 더러운’ 것이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재미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를 도외시한다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하나를 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그맣고, 빽빽하고, 주의력이 높고, 근면하고, 성벽으로(베네치아의 경우는 바닷물로) 둘러싸인 하나하나의 도시가 정치의 무대였다.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공간이었다.

 ―“서장” 중에서

 

 로렌초의 권력행사는 상당한 범위의 시민들과 가문들이 자유의지에 의해서든, 뇌물이나 강압에 의해서든 동의와 협조를 할 때만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라 할 수 있는 벼락출세자들은 로렌초의 뜻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로렌초의 도움 없이는 독자적인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들 피에로조차 그러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권력기반이 상실된 얼마 후에 그는 실각하고 만다.

 이러한 비극은 결국 로렌초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는 처음에는 두려움과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놓고, 다음에는 그것을 이용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대중독재’를 확립시켰다. 피렌체 공화국의 국가권력을 메디치가의 전유물로 만들면서 그는 메디치가에게 좋은 일이 바로 피렌체에게 좋은 일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러한 확신이 피렌체 공화국의 종말을 초래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같은 저자의 결론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 김기봉 교수가 서평에서 지적했듯이 공화국이란 ‘res publica’라는 어원의 의미 그대로 ‘공공의 것’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제1항으로 적고 있다.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거나 ‘현대가’의 것이 된다면 피렌체 공화국처럼 쇠락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 책은 복잡한 권력구도와 인간적 욕망으로 점철된 정치 드라마를 통해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근본적으로 ‘선하거나 이타적인’ 의지를 지닌 경우는 없다. 모든 행위가 권력과 욕망의 발로이자 귀결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반복되는 음모와 폭력이 그 세계의 본 모습이자 작동 원리였던 것이다. 그 중심에 정치적 상징성이 너무나도 강한 사건인 ‘피의 4월’, 즉 메디치가 살인사건이 하나의 열쇠처럼 자리하고 있다.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4․19혁명이 대한민국 정체政體의 실마리가 된 것처럼.


▶ 등장인물

 

메디치

위대한 로렌초 : 피렌체의 비공식적인 국가원수(1469~1792).  / 줄리아노 : 로렌초의 동생으로 1478년 4월 살해된다.

코시모 : 로렌초의 할아버지. 피렌체의 지도자(1434~1464). / 피에로(통풍쟁이) : 로렌초의 아버지. 피렌체의 비공식적 지도자(1564~1469).

 

파치

자코포 경 : 은행가이자 상인으로 음모의 주모자. / 프란체스코 : 은행가이자 상인으로 음모의 주모자이며 자포코의 조카.

굴리엘모 : 프란체스코의 동생이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매부. / 레나토 : 굴리엘모와 프란체스코의 친사촌.

 

그 밖의 인물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 피사 대주교, 음모의 주모자. / 지롤라모 리아리오 백작 : 이몰라-포를리의 영주이며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조카이자 음모자.

몬테세코 백작 : 교황과 지롤라모 백작의 용병대장으로 음모자. /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1) : 4월 음모의 배후 조정자.

산 조르지오 추기경(라파엘레 산소니 리아리오) :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조카이자 제자.

나폴리 왕 페란테(1458~1494) : 음모의 배후 인물. / 우르비노의 페데리고 공작(d. 1482) : 음모의 배후 인물.

베르나르도 반디니 바론첼리 : 피렌체의 은행가(파치가의 고용인으로 추측)로 음모자.

자코포 브라칠리오니 : 고전학자.  산 조르지오 추기경의 가정교사이며 음모자.

폴리치아노 : 로렌초의 후원을 받는 인문학자이자 시인으로《음모의 회고》의 저자.

 

 

차례

서장 / 음모 / 신분 상승 / 마네티의 프로필 / 파치 가문 / 소데리니의 프로필 / 로렌초의 등장

피의 4월 / 시신 훼손과 식인 풍속 / 군인의 진술 / 분노의 대결: 교황과 시민 / 파치가의 재앙

리누치니의 프로필 / 영주이자 시민, 로렌초 / 결산

 


지은이 라우로 마르티네스Lauro Martines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환점이 된 이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한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로스앤젤레스)에서 유럽사 교수로 활동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써 호평을 얻은 그의 대표작이 다름 아닌 이 책이다. 현재 그는 교수직에서 물러나 소설가인 아내와 더불어 런던에 살며 신문《타임스》의 문예란에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고 있다.

 


 옮긴이 김기협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동양사 공부를 시작해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고대 천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마테오 리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위원(과학분과),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과 한국과학사학회 편집위원을 지냈다. 2002년부터 중국 연변과 한국을 오가며 동아시아 역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바보만들기》,《반란의 천사들》,《역사의 원전》,《소설 장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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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우리 시각으로 읽는 세계의 역사 02] file

한국서양사학회 엮음|416면|발행일 2009년 4월 6일|값 18,000원|ISBN 9788991510913 하나의 세계사에서 복수의 세계사들로 유럽중심주의, 왜 문제인가 진정 민주주의의 원조는 그리스 아테네인가.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최초로 발현한 것인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보편이자 정의로 간주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언제나 유럽의 것으로 서술되어왔다. 유럽은 스스로를 ‘문명’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이 ‘진보’를 성취했다고 뽐내면서 인류의 보편적 지도권을 주장했다. ...

아메리카나이제이션―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미국화 file

감덕호 ․ 원용진 엮음|464면|발행일 2008년 5월 7일|값 20,000원|ISBN 9788991510678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미국식 영어에 미친 나라 풍경 하나.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이경숙 위원장이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며 미국식 영어 발음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미국에서 ‘오렌지’라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더라는 것이다. 어느새 아침 인사는 ‘안녕하세요’가 아닌 ‘굿 모닝’으로 바뀌어 있다. 영어몰입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file

라우로 마르티네스 지음|김기협 옮김|496면|발행일 2008년 4월 29일|값 20,000원|ISBN 9788991510661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뒤흔든 살인사건 ― 음모와 폭력의 정치 극장 그 후 사나흘 동안 너무 많은 죽음이 있어서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길거리가 시체의 이런저런 토막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연극과 이야기를 좋아하던《군주론》의 저자를 비롯해 며칠 동안 피렌체 사람들은 소름끼치는 광경과 음향이 넘치는 극장에서 살았음이 틀림없다. ―“피...

서양문화사 깊이 읽기[우리 시각으로 읽는 세계의 역사 01] file

서양사학자 13인|424면|발행일 2008년 3월 10일|값 15,000원|ISBN 9788991510630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조지 오웰에서 뉴턴까지》를 통해 살아 있는 역사 읽기의 참맛을 선보인 푸른역사가 이번에는 우리 시각으로 쓴 참신한 서양문화사 읽기를 선보인다. 이 책은 기존의 서양사와는 문제의식이 다르다 이번에 선보이는 《서양문화사 깊이읽기》는 독자들의 서양문화사에 대한 학문적 흥미를 유발하고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미 ...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 file

데이비드 블랙번 ․ 제프 일리|최용찬 ․ 정용숙 옮김 |271면|발행일 2007년 4월 9일|값 13,000원|ISBN 978899151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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